diary back memo guest
   
ɴ
   

 

"살아갈 의지가 있다면 어디라도 천국이 돼…

 왜냐면 살아있으니까…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는 어디에라도 있어."

quote 220823

2022.08.23 20:19 # reply

1888년과 1889년에 드뷔시는 바이로이트에서 바그너의 오페라를 듣고 바그너가 조성을 한계점까지 밀어붙이는 방식에 영향을 받긴 했지만, 이 거대한 신화적 음악극을 신시대의 서막이 아니라 구시대의 종말로 보았다.

220820

2022.08.20 20: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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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 220818

2022.08.18 01:15 # reply

 선택할 수 없는 삶은,

 사람을 차근차근 갉아먹곤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아주 일찍이 인내하는 버릇이 들어 있었어, 서로에게 보았던 것은 분명 그 버릇의 잔재, 인생을 덮은 그림자. 하지만 거기 안주할 수는 없다는 것을 우리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스스로를 속일 수도 없다. 다만 길고 긴 이야기를 토로할 수 없을 뿐.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지극히 적다. 흙탕물을 걸러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오래도록 기다려야 맑은 물을 마실 수 있다는 것을.

 명백히 호의를 지닌 타인에게는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을 것이다. 따라서 아래 가라앉은 자갈과 흙모래가 씹히지 않도록 인내했다. 이 이상의 방법을 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나, 애석하게도 알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으므로.

 

 시간이 지나며 우리의 앞에는 맑은 물 한 잔이 새로 놓인다. 우리는 여기서 맑은 물을 선택할 수 있다. 어떤 노고나 기다림 없이도. 누군가의 수고로움을 기꺼이 받아들일 만한 의무를 다했고, 마땅한 권리가 우리에게 주어진다. 그 때가 되어서야, 흙탕물의 맑은 부분을 들이키지 않아도 살 수 있는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당신은 앞으로 수많은 선택을 할 수 있다. 머리카락을 기르든 자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기능성에 치중하고 옷자락이 나풀거리지 않도록 하네스를 차는 대신 부드러운 직물로 만든 얇은 블라우스를 입어도 괜찮다. 무릎 위로 한 뼘 넘게 올라간 바지를 입어도 바닥에 나뒹굴어 다리가 쓸릴 일은 없겠지. 힙색 대신 한 줌도 안 될 것 같은 자그마한 가방은 어때. 그 안엔 정말로 젤리만 넣어도 될 거야.

 그는 그 모든 말 대신에 생을 약속한다. 이런 말들에 치중해 가라앉을 필요는 없고, 선택을 강매할 수도 없으므로. 당신이 스스로 원하는 것들을 찾아갈 순간을 기다리기로 한다. 당신이 원한다면 언제든 그 손을 잡아줄 테니.

write 220812

2022.08.12 00:14 # reply

 남자는 총을 든다. 자신이 지켜야 했던 대상에게로. 당신에게 아직 나의 생이 들려 있음을 안다. 무거웠던가? 그러진 않았을 텐데. 버거웠을까? 지금은 그렇겠지. 새까맣게 변질되어 흉터가 구분되지 않는다. 그는 입을 굳게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어떤 것들은… 단 하나를 기점으로 무너진다. 어떤 감정도 이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장전은 이미 되어있다. 아직 저 눈은, 눈만은 사람의 것.

 늦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안다. 방아쇠를 겨눈다.

 이러려고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닐 텐데.

 

 당신의 육신이 무릎 꿇기 전 손 뻗어 낚아챈다. 바닥에 눕히고 가슴께에 손을 교차해 올려두자. 내가 이루어낸 평화의 안에서 당신이 익히 그러했듯. 머리카락을 정돈한다. 거진 평소와 같다. 그럼에도 화약 냄새가 추락해 기어코 당신을 덮는다. 탄피를 주워든다. 손 뻗어 눈을 감긴다. 나는 이러고 싶지 않았어. 모두가 익히 아는 스스로의 지표를 꺾었다. 수호는 한 순간 의미를 잃는다. 손바닥 아래, 나풀거리던 나비 날개 같은 감각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최선이었던가? 최선이었을 것이나, 최악이다. 이런 순간은 그 누구에게도 필요하지 않아. 그의 표정은 무기질적이다. 누구도 남자의 마음을 갈라볼 수 없다. 아직 이 절망에는 이름이 없다. 그는 거기 루이리 양의 이름을 붙이기로 한다.

 불을 찾는다. 당신이 대행할 수 없는 장례를 치른다.

 당신이 흘릴 수 없는 슬픔은 비로소 남자의 몫이 된다.

救済の技法 Technique of Relief 

 

たじろげ 壮絶かつ 空を舞うエレジーよ

물러나라 하늘에 흩날리는 엘레지여

溺れるカーリーの手に 千の藁がなびくよ

물에 빠진 칼리의 손엔 천 가닥 짚이 나부끼고 있어

嗚咽は高純度 灼熱の断末魔

오열하는 높은 순수 작열하는 단말마

ひも解け記憶の粋 救済の手引きを

들춰내라(;읽어내라) 기억의 정수 구제로의 인도를

 

繰り出せ 警鐘を打ち レスキューのコスプレで

반복하라 경종을 두들겨서 구원의 코스프레로

夜通し高徳の地は 慟哭の嵐よ

밤새도록 고결(고덕)한 대지에는 통곡의 폭풍이여

希望は高品位 迫力の完成度

희망은 고품격 박력있는 완성도

取り出せ ヒト科の粋 救済の技法を

추려내라 인간의 정수 구제의 기법을

 

※急げよ ニューロンのニューロンの谷間へ

서둘러라 뉴런의 뉴런의 골짜기로

掘り出せ 隣人の隣人のコスモを

발견하라 이웃의 이웃의 코스모를

駆り出し 細胞の細胞のスキルを

끌어내라 세포의 세포의 스킬을

動かせ レスキューのレスキューの遺伝子を※

움직여라 구제의 구제의 유전자를

称えよ唯一の歌 キミが在るそれだけを

찬양하라 유일한 노래를 그대가 살아있다는 오직 그것만을

燃え出す高僧の目に 花としてたたずみ

타오르는 고승의 눈에 꽃처럼 머무는 것

読経はローファイの 白熱の断罪図

독경은 ‎Lo-Fi의 희게 타오르는 단죄도

施せ 存在の粋 救済の技法を

베풀어라 존재의 정수 구제의 기법을

 

(※くり返し)

(※반복한다)

 

커뮤 생각나서 번역해둠

* 누비님 조언 : 전체적인 어조는 유하고 고상한 느낌.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아랫사람에게 가르쳐주는 느낌~

write 도검난무

2022.06.24 19:00 # reply

도검난무 하세베 드림(여사니와, 이름 없음)

접기

 긴 머리카락은 언제나 정갈하게 그러모아 흰 베일 속에 숨겼다. 여자가 겉으로 드러내는 살은 흰 장갑과 옷의 틈새, 길게 내린 베일이 바람에 흩날리는 순간 스치는 틈, 그리고 창백하게 희고 가는 발목만이 전부였다. 헤시키리 하세베는 그런 틈들이 시야를 스칠 때마다 가장 깊은 은밀을 엿보는 감각을 느꼈다. 그것은 기묘한 불안이기도 했고 어떤 종류의 환희이기도 했다. 어떤 종류의 것이건 감정은 단 한 번도 온건한 적이 없었다. 

 

"주군, 계십니까."

 

 그는 주군을 기꺼이 모셨다. 이 혼마루의 어떤 남사도 그보다 그녀에게 가까운 적 없었다. 헤시키리 하세베에게 그것은 명예였다. 그는 주가 원하기만 한다면, 사실은 그가 더욱 원하는 것이지만 더욱 치욕스러운 것도 해낼 수 있었다. 주명이라면 단 하나도 놓치지 않을 작정이었다. 

 

 주로 그가 주의 곁에서 하는 것은 섬세한 보필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를 그를 제외한 남사들에게 전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모두와 필담을 나누었다. 처음에는 하세베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예외가 되기 위해 필사적이었고, 그의 충심은 보답받았다. 

 

"헤시키리, 붓을."

 

 그러면 그는 주의 손에 먹을 가득 머금은 붓을 건네는 것이었다.

 

-

 

여자는 남자의 눈을 들여다 본다. 보랏빛 모란이 피었다. 풍류 있는 눈이야. 너는 싫어하는 말이겠지만. 남사는 눈을 깜박이지 않은 채 고했다. 주군의 말씀에는 한 점 어지러움 없습니다. 그는 오로지 주군의 잣대에 맞추어 살기를 기원했으나 그가 외치는 주군은 현세에 없을 명군이어야 했다. 헤시키리 하세베는 그래서 여자를 주군이라 불렀다. 여자는 자신의 신념을 꺾는 법이 없었다.

 

-

 

"헤시키리, 나는 간혹 그대가 두렵구나."

 

 그의 여주인이 말했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헤시키리 하세베는 오로지 주군을 위한 검이다. 그가 아는 주군이란 단 한 번도 그의 기준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으므로, 두려워할 이유조차 없다. 어쩌면 그의 기준 자체가 이 새 주인을 위해 맞추어진 것일지도 몰랐다.

 

 사니와는 흰 천을 깊이 내리고 붓을 든 채였다. 먹물이 여우 꼬리털로 만든 끄트머리에 방울졌다. 사니와는 느리게 한숨을 쉬었다.

 

"되었어, 이해하리라 생각치도 않았다. 나가 보거라."

 

 하세베는 도무지 의문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이었으나 주명에 불복하는 것만큼 그에게 오탁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고요히 머리를 숙이고 주군의 곁에 펼쳐 두었던 자신의 일거리들을 정리해 챙겨 들었다.

 

 곧 문 닫히는 소리가 아주 작게 들렸다. 사니와는 들리지 않았으리라 생각했겠지만, 미처 닫히지 못한 미세한 틈 새로 여주인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챙긴 업무들을 품에 안고 걷다가, 미카즈키 무네치카를 만난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썩 좋지 못한 얼굴이구나."

"주군께서 저를 두렵다 하시기에."

 

 대화는 단절되었다. 그는 그 이상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헤시키리 하세베는 올곧었다. 그는 자신의 그림자를 보지 않는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미카즈키가 웃었다. 그는 오랜 세월을 살았다. 결국 두려움은 그녀가 인간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생긴 그림자나 마찬가지다.

 

 

 사니와의 방에 때마침 들른 단도 하나가 심부름을 안고 헤시키리 하세베를 찾은 것은 그 날 저녁식사가 끝나고였다. 좀처럼 풀리지 않는 일들을 내팽겨치고 빠른 걸음으로 곧장 향하는 그의 길에는 주군의 방이 있었다.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고요했다.

 

 여주인은 검은 머리를 풀어헤친 채였다. 흰 유카타를 단정하게 챙겨입은 뒷모습이 정결했다. 하세베는 그 자리에 부복했다. 문이 열린 채였다.

 

"헤시키리, 주명을 거기서 들을 생각인가."

 

 그는 조금 더 다가왔다. 문이 쾅 닫혔다. 영력이었다. 그러고 시간이 조금 흘렀을 것이다. 사니와의 목소리가 느리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노력했다, 헤시키리."

"주군의 노력은 합당합니다."

"네가 아는 나는 너무나 고결하구나."

"그것이 제가 아는 주군입니다."

"나는 이제 지쳤어."

"잘 해오셨습니다."

 

 여자는 잠시 숨을 멈추었다. 그리고 느리게, 깊게 내뱉었다. 어깨가 축 늘어졌다.

 

"헤시키리, 나는 너를 위해 노력했다."

 

 이번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하세베는 머리를 내리치는 충격으로 잠시 멈춰 있었다. 그의 놀라움을 가라앉히기도 전에 사니와의 말은 이어졌다.

 

"나는 정결치 않다. 내 정의는 없었어. 내 생을 고결하게 살아갈 생각도 없었다. 나는 그저, 헤시키리. 너를 만족시키고 싶었다."

"주군."

 

"그러나 나는 이제 지쳤어, 하세베. 너를 위한 주군으로 남을 수가 없어."

 

 여자가 느리게 일어섰다. 천천히 뒤로 돌아선다. 눈에는 포기와 체념, 한 때 품었던 사랑이 담겨 있었다. 그의 주군은 이렇게 작은 사람이었던가.

 

"밤중에 너를 귀찮게 했구나. 가보아도 좋아. 사니와를 포기하는 것이 내가 할 마지막 일일 테지. 모두에게 전해 다오."

"싫습니다."

"주명이라도?"

"오로지 주군만이 저를 쥘 자격이 있는 합당한 주인이십니다."

 

  헤시키리 하세베는 사니와가 자신을 사랑하기를 포기한 바로 이 순간 사랑에 빠진다.

 

 

2016년도 1월자

220602

2022.06.02 17: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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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e n

2022.05.14 17:27 # reply

어떤 인지는 현재에 머무르지 않는다. 

write 220327

2022.03.27 02:14 # reply

 

 

 

 늦은 가을의 겨울맞이를 위한 대청소는 도톰한 양모 융단을 마루에 까는 것으로 끝났다. 가을 내내 팜플렛을 들여다보며 한참을 생각에 잠겨있던 젠이 기어코 스칼홀트를 데리고 직접 만져보고 그 색을 확인한 후에서야 만족한 물건이었으므로 물건의 섬세함이나 전체적인 아름다움에 관하여 구태여 입댈 구석은 없었다. 겨울에 맞추어 어두운 색의 커튼을 새로 달고, 가을을 장식했던 라탄 소재의 화병은 다락방에 올려둔 후 새로 산 투명한 화병에 목화와 솔방울, 시네신스와 카스피아 꽃다발을 단정하게 꽂아두었다. 꽃들의 이름이며 그 의미 같은 것은 알지도 못하면서 단지 젠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꽃다발을 선물한 여자는 막 청소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새로 구입한 소파 커버의 재질을 손 끝으로 가볍게 쓸어본 젠도 스칼홀트를 도왔다.

 

 청소가 끝나면 따뜻한 물에 기진맥진한 몸을 한껏 풀었다 건져놓았으므로 다음날의 늦은 기상은 필연이었다. 스칼홀트가 먼저 일어나 자리를 비운 탓에 느껴진 약간의 서늘함마저 침대를 벗어나고 싶지 않은 요인이기도 했는데, 침대 아래로 푹푹 처박히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고 몸을 일으키면 그 때는 이미 해가 하늘 높이 떠있었다. 깨끗하게 씻은 얼굴을 따라 물방울이 미끄러져 잠옷을 적셨다.

 

 

 복도로 조용히 걸어 나오면 길게 깔린 융단 위에 작은 발이 파묻혀 소리 한 조각 울리지 않았다. 복도를 등진 거실의 소파 너머로 스칼홀트의 흰 뒷모습이 보이자, 젠은 숨을 가라앉히고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가까워질 수록 심장이 크게 뛰는 것 같았다. 가슴께를 한 손으로 꾹 누르며 등 뒤에 도착한 젠이 앞쪽으로 얼굴을 내밀면, 스칼홀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옆을 돌아봤다. 눈이 마주친다. 양쪽 모두 흰 눈을. 요동치지는 않아서, 그녀가 기대하는 답이 나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젠은 물었다.

 

"놀랐나요?" 그 뒤로는 익숙한 대답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 익숙함은 아주 짧은 세월 동안 이룩한 것이어서 그녀는 반사적으로 오랜 기간 향유했던 낯선 경험을 회상했다.

"놀라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깜짝 놀라던데 말이에요!"

"그야 오는 걸 알고 있었으니 놀라지 않아."

 

 젠의 그림자가 기울어도 스칼홀트의 눈은 음영이 지지 않아 빛났다. 한 겹 그림자도 없는 것처럼. 가릴 수 없는 눈이 이쪽을 고스란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떨림 없는 눈꺼풀, 헤매이지 않는 답변이 올곧게 부딪혀 왔다. 젠은 반사적으로 몸을 슬쩍 뺐다가, 눈을 피하며 소파를 빙 돌아와 스칼홀트의 옆에 앉았다. 그래도 한 번쯤은 놀라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잠깐 도피했다 돌아온 그녀는 늦지 않게 스카하의 말에 대꾸했다. 따뜻한 손을 잡아 약간 물기가 남아있는 얼굴을 기대면서.

"당신은 나에 대해…"

 그러면 뺨에 닿아있는 손의 어느 즈음에 흉터가 있었는지를 짐작하게 되었다. 내 감각이 스카하를 향해 온통 기운 것 같아요, 그런 말은 하지 않지만. "뭐든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군요~?" 이어지는 답은 예상했음에도 서운해졌다가, "모든 걸 알지는 못한다." 그 다음에는, "하지만 네 기척을 알아. 향기가 난다. 모를 수가 없지." 반사적으로 눈을 마주치게 했다.

 온통 희던 눈의 한쪽은 이제 온전히 붉은색이 되어 있었다.

 

 할 수 있는 말은 많다. 향수 같은 것은 뿌리지 않았다든지, 이런 융단 위에서 소리 한 점 없이 춤추던 때가 있었다든지, 다가가는 줄도 모르고 죽어간 사람들이 있었다든지…… 그러나 그 모든 할 수 있는 언어 대신 젠은 자신에게 필요한 언어를 찾는다. 당신이 모를 수 없는 나는 지금, 어떤 말을 하고 싶어해요? 라고 그 답을 전가하고자 하는 충동이 스민다. 그러나 그녀는 대신 스칼홀트의 눈을 들여다본다. 죽 곧은 눈은 떨림 없이 그녀를 비춘다. 거기에는…,

 젠 자신이 비쳐 보이고, 그래서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밖에 없다. 뺨의 물기는 모두 말랐다. 충동의 한 겹 너머, 자신의 마음에 응하며 젠은 팔을 뻗어 새하얀 여자를 끌어안는다.

 

 깨끗하게 타들어가는 향이 나고 있다.

 저 안쪽에서부터.

좋아하는 픽크루 링크

2022.03.26 00: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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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 220312

2022.03.12 12:12 # reply

 

 

 

…막 커튼을 걷고 돌아온 까닭에 햇빛이 창틀을 타고 흘러내려 소파까지 기어들어 있었다. 빛이 닿지 않는 부근에서 두 사람은 익숙하게 맞닿아 있고, 입 안을 몰아붙이는 감각은 낯선 것이 아니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 누구도 무감하지 않은 도시에서 받아냈던 감각을 알고 있으므로. 입 맞춰줘요, 지금. 그러면 따뜻하고 조금 거친 손이 뺨을 감싸쥐고 그저 부드럽기만 한 것도 아닌 입술이 여자의 입술 위로 떨어졌고, 그 순간 스칼홀트의 흰 머리카락이 쏟아져 장막처럼 단 둘만이 이 세계에 있는 것 같았던. 

 깊은 만족을 불러온 한 순간은 자꾸만 재현되어, 당신과 나 사이가 끊어진 적 없는 것 같아.

 짧은 상념이 스친다.

 

 전날은 화이트데이였는데, 일본에서 지내던 젠이나 챙길 법한 것이어서 사탕 가게는 영문 모를 호황을 누렸고 스칼홀트의 부대원들도 영문 모르게 한 달 전 초콜릿에 대한 보답을 받았다. 그들은 스칼홀트에게 결혼했냐고 물었을 때 그렇지 않다는 답을 들었으므로 이 무뚝뚝한 동료를 마중나온 작은 여자를 보면서, 그리고 그녀가 대뜸 안겨드는 것을 거절하지 않고 마주 안아 거의 가리다시피하는 것을 보면서 결혼만 하지 않은 사이라고 생각했다. 약간의 오해를 제외하고는 모두 즐거운 3월의 어느 하루를 보냈는데, 다만 그 다음 날, 스칼홀트의 몫으로-사실 상 그가 사탕 같은 것을 잘 먹지는 않으므로 젠의 몫으로-산 사탕을 입 안에서 굴리던 중 작은 문제가 생겼다. 

 

 짧게 아, 하고 반사적으로 소리를 내고, 입 안에서 약간의 짜고 비린 맛을 느끼면 젠은 "베였어요." 하고 말하며 혀를 내밀었다. 스칼홀트는 젠이 그렇게 말하기 전부터 이미 젠을 보고 있었으므로, 구태여 이름을 부르지는 않았다. 그 시선을 느끼던 여자는 말을 이었다. 

 

"달래줘요. 입 맞추면서." 

 그녀의 스카하는 그 말을 특별히 의심하지 않는다. 이것으로 괜찮은 건가, 라는 질문 같은 것도 입 위에 올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지, 피에 섞인 독에 쓰러지지는 않을지 의심하는 것은 젠이다. 다만 불안한 마음이 입 밖으로 쏟아지기도 전 익숙한 손길이 여자의 뺨에 닿고, 젠은 그 손에 얼굴을 조금 기댔다. 이윽고 스칼홀트가 어리광 부리는 여자에게 입을 맞추었다. 광택 있는 검붉은 색 손톱이 옷깃을 붙잡는다. 여느 때처럼 흰 머리카락이 쏟아진다, 이 세계는 단 둘을 위해 잠시 유리된다.

 마치 숨을 삼키듯 이 마음을. 입 안을 훑는 감각 사이에는 경미한 고통이 뒤따르고, 이윽고 비린 피 냄새는 타올라 순식간에 아름다운 향을 냈다. 젠은 스칼홀트의 옷을 잠깐 놓았다가 다시 손을 뻗어 목에 팔을 둘렀다. 입 안을 가득 채운 향이 목 너머로 넘어온다. 젠이 해왔던 것을 올곧게 배워 그대로 쏟아지는 입맞춤은, 젠이 하듯이, 무언가를 삼켜달라는 듯 맹목적이다. 당신을, 마시는 것 같아…. 그런 생각이 잠시 이어지면 맞닿아 있던 입술이 떨어진다. 그러나 향은 여전히 입 안에 가득 남아서, 젠은 숨을 내쉴 틈 없이 머금은 것을 느리게 삼켰다. 당신이 두고 간 것 중 그 무엇도 놓치지 않으려고.

 

 그러고 나서 몸을 조금 떠는 것까지도, 스칼홀트는 젠의 위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듯 그녀의 스카하는 묻지 않는다. 눈을 돌리지 않을 뿐. 그 시선을 마주쳤다가, 젠은 이윽고 얼굴을 스칼홀트의 목덜미에 파묻었다. 취해본 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인데 어쩐지 어지럽고 늘어지는 기분, 무언가에 바짝 긴장했다 맥없이 풀려난 것만 같은 감각, 그리고 내 몸을 가득 채웠을 당신의 향을 이대로 계속 머금고, 당신과 닿아있고 싶은 욕망…. 그녀는 그대로 기대어 입 안의 상처를, 출혈이 멎은 그 부근을 입 안의 감각만으로 더듬는다.

 사탕은 그 사이 모두 녹았다. 달래지고서도 어리광 부리는 여자를 안아든 채 스칼홀트는 소파에 몸을 뉘였다. 엊그제 읽어달라며 내민 책을 이어서 읽어야 했으므로. 햇빛은 그 사이 소파를 데워놓았고 그의 품에는 작고 서늘한 여자가 있어 균형은 교묘하다. 생의 소리는 여전히 심장에서 시작해 온 몸으로 퍼지고, 젠은 심장보다는 조금 작게, 그러나 생생한 맥박을 목덜미에서 느끼며 그대로 몸을 늘어뜨린다. 정말로 끊어진 적이 없는 것만 같아, 이러고 있으면. 당신의 불길에 나까지 흘러가는 것 같아서.

 

 이윽고 이제는 두 사람의 위로 햇빛이 쏟아진다.

 3월 15일의 어느 오후에는 그 누구도 외롭지 않았다.

20220224

2022.02.24 17:39 # reply

당신을 위해서입니다. 클라크 가에는 더 이상 당신의 자리가 없어요. 그는 다정하게 말한다. 하워스워드는 여전히 칼리, 당신에게 열려 있어요. 당신이 칼리 하워스워드인 이상, 내가 번스타인인 이상… …당신이 하워스워드 후작부인으로 존재하는 그 언제까지라도. 그는 그녀의 약지에, 무거운 결혼반지 위에 또 하나의 약속을 끼워넣는다. 

도련님.

그게 아닙니다, 후작부인.

후작, 이라고, 불러주셔야죠.

형님에게 그러셨듯이….

 

그의 손이 여자의 손등을 스치고 지난다.

20220223

2022.02.23 14: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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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16

2022.02.16 20:46 # reply

https://www.khan.co.kr/feature_story/article/201805312152005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뼈, 동서양의 ‘신데렐라’들도 소원을 빌었다

220216

2022.02.16 20:41 # reply

절대적 신은 사라졌고 도처에 비극은 만연하다.

노비코쨩

2022.02.07 22:49 # reply

https://blog.naver.com/jqqttl/221211173034

노비코쨩 원본

https://www.pixiv.net/artworks/32945540

write 蛇殺夢

2022.01.31 2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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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야담 백업

2022.01.17 1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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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15

2022.01.15 19: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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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e 220115

2022.01.15 19:46 # reply

 우리는 앞으로도 꾸준한 실패를 하게 될 것입니다. 일하는 장면에서, 관계를 시작하고 유지하는 장면에서, 크고 작은 실패를 경험하겠지요. 우리는 그때마다 우아한 쇠퇴, 우아한 실패를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점차 늘려갈 회복탄력성에 기반해, 내가 지금 실패한 이 지점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기를 바라는지 거리를 두고 생각할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성공할 때에는 아이처럼 굴어도 좋지만, 실패할 때만큼은 더 세련되고 우아했으면 좋겠습니다.

 

실패에 우아할 것.

http://www.psychiatric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1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