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back memo guest
   
ɴ
   

write 230731

2023.07.31 10:46 # reply

데릭리안

조직 잠입AU

접기

수십 년의 세월을 담고 있을 오동나무 문짝을 지난다. 고작 일주일 전에 새로 간 문짝이다. 문 너머의 도련님은 탄환 자국 따위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종류의 인간은 되지 못했다. 애초에 후계자도 되지 못한 인간이다. 어지간한 사유가 아니고서야 범죄자들은 특유의 폐쇄성으로 집단 내에서의 규율을 따르기를 선호한다. 설령 갈아엎는다 해도 우두머리가 바뀔 뿐 기존의 법과 규칙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따라서, 혈통에 따른 권위를 두고서도 후계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상당한 '하자'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데릭 디에즈는 그런 상부의 판단에 의거해 조직으로 잠입했다. 

 

태생적 한계라고는 해도, 뒷골목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런 곳에 잘도 집어넣는단 말이지.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남자는 반듯한 자세를 유지했다. 상부에서의 판단은 곧잘 틀리곤 하는데, 책상 앞에 앉아 보고서로만 사람을 파악하려 하니 어쩔 수 없다고는 생각했다. 그러나 데릭 디에즈는 이 정도는 좀 제대로 파악해줬으면 안 되느냐고 닿지 않을 투덜거림을 이어갔다. 눈 앞의 청년은 잘 조형된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 썩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의기소침한 모습이 조직원들 말마따나 후계자 감은 못 됐다. 특별히 하자가 있거나, 망나니라서가 아니라... 아니지, 이런 경우엔 저런 성격을 하자라고 할 수 있을까. 

 

섬세한 인상의 미인이었다. 연주를 위해 바이올린을 손에 들면 더더욱 그랬다. 문외한인 그가 듣기에도 뛰어난 실력이었는데, 그에 반비례하듯 집단을 이끌어나갈 카리스마 같은 것은 없었다. 차라리 하나의 집단을 장식하는 조각상에 가까웠다. 법원이든 뭐든 커다란 건물 앞엔 의레 하나씩 놓이곤 하는 그것. 그러나 압도적이라기보다는 미추를 먼저 논하게 됐다. 그림자 드리운 표정 아래에서도. 

 

어차피 언젠가 이 조직을 떠야 한다. 잠입수사란 대체로 그렇다. 어지간히 미치지 않고서야 과거를 버리고 그대로 조직에 소속되어 살아가는 일 따위 벌어지지 않는다. 해야 할일은 어디에든 있었고, 도와야 할 사람은 별처럼 많았다. 그래서인지 아름다운 외관보다도 놀라울 정도로 평범한 내면을 가진 이 사람에 마음이 갔다.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고 있었다. 폭력을 무서워했고, 비윤리적인 일은 두려워했다. 식탁에서 시체 몇 구의 이야기가 나오면, 그리고 태연하게 뒷세계의 자질구레한 에피소드가 뛰쳐나올 때면 나이프를 쥔 손은 잠시 멈추곤 했다. 저건 의태일까? 진심일까? 그는 분간하지 못했다. 상부에선 무엇이든 의심하라고 했었고, 그는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언젠가 떠나야 하니까.

 

어지간히 미치지 않고서야. 누군가의 살상은 언제든 벌어지는 일, 문을 열고 나온다. 창문엔 피가 튀어 있고 문짝엔 납 탄환이 박힌 채다. 시체의 손 끝이 문을 가리킨다. 여길 반드시 들어가야만 했다는 듯. 그러나 들어오지는 못했다. 등 뒤의 사람을 돌아본다. 못 가겠어, 겁에 질려 떨고 있었다. 이런 순간까지도 사람은 의태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속일 수 있을까? 남자는 그에게 다가갔다. 눈을 마주치면 눈물이 흐른다. 속인다면 속는 수밖에 없다. 하자라면 지나치게 눈부신 금이 아닌가, 틈새로 달빛이 스며드는 것 같다. 그는 자신이 언젠가 떠나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애초에 조직원이 아니었고, 자신 또한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여기에 잠입했다. 상부는 그를 신뢰하고 있고, 그는 돌아가서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에겐 자신만의 집이 있고, 자신만의 생활이 있다. 데릭 디에즈라는 사람을 이루는 가장 사소하고도 평범한 것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이 순간 진심을 담아 말했다. 지켜줄 테니까.

 

젖은 눈이 깜박인다. 창백한 얼굴은 웃지 않는다. 그럼에도 갈 수 있다 말한다. 지금 당장은 그것으로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