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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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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5 01:04 # reply

 

 

 

 벽에 탄환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다. 그런 시대다. 바닥에 내려놓았던 운동 기구의 흔적은 그렇다 쳐도. 형사는 기꺼이 그 방을 자신에게 내주었다. 익숙해진 공간을 바꾼다는 건 번거로운 일이 아니던가? 형사의 옆에선 누리는 혜택이 많았다. 형사를 따라다니며 보는, 보편적으로 기체들이 겪는 일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과거의 편린, 집 안의 잔재, 한 사람 분의 생활, 거기서부터 상대가 용납할 수 있는 만큼만 알아간다. 하루 분량, 일주일 분량, 한 달, 그리고 1년.

 

 레오라고 불리울 때에는 해야 할 일이 단순했는데, 형사는 그에게 그 이상을 필요로 한다. 그러니 그는 면밀하게 관찰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사람의 상처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법이 어떻게 이 사회를 규정하는지도… 규칙은 자꾸만 쌓이고, 작은 방 안은 그럴싸한 한 명 분의 공간이 되었다. 책상 위의 작은 가챠퐁들은 순서를 모르고 중복되어도 버려지지 않는다. 커다란 인형의 자리는 때때로 그를 대신해 의자에 앉았다가, 침대에 누웠다가, 책을 읽는 시늉을 했다. 형사는 그 모습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짓는 것이 다였다. 이상한가요, 하고 물어보면 그래, 하고 돌아오는 짧은 답.

 

 시간은 흘러서 어느덧 오늘. 여기 선 내게 존재하는 건 과분한 이름, 당신의 검. 이가 빠지지 않도록 날을 세워야 할 텐데, 그리운 이들은 저 편에, 당신이 아는 것은 고작 팔로 가득 안은 만큼의 둘레. 난 그 이상을 알아, 그런데도 당신을 알고 싶어져, 당신이 용납할 수 없는 부분에서, 나를 어디까지 용서할지를. 타치바나 츠루기는 도무지 그에게 날을 세울 수가 없었다. 서로가 모르는 과거의 흔적이 있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 자꾸 그 너머를 훔쳐보고 싶었다. 규칙의 벽을 넘어서서….

 

 

 

 다시 오늘에 다다른다. 여전히 타치바나의 검은 할 수 있는 것을 고려한다. 필요를 찾는다. 날을 세우기는 진작 글렀다. 눈을 감고 달아나기엔 너무 늦었다. 애초에 그런 것을 용납할 수 있을 리 없다. 당신에게 물었다. 대답할 수 없으면서도.

 

밀고도 배신도 없는 게 맞느냐고.

당신은 명령도 규칙도 없다고 말했다.

어쩌면 이미 필요의 방아쇠는 그 때 당겨졌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