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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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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9 23:11 # reply

    2013.12.22 백업_별들의 밤
 

 여기는 우주. 별과 별이 노래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나요? 나는 우주를 걷는 여행자. 지금은 블랙홀이 되어버린 어느 늙은 별, 그가 준 이름의 뜻은 즐거운 외로움. 그 이름을 말하는 법은 잊어버렸지만 뜻만큼은 아직도 내 심장을 뛰게 합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밟아 나아가는 길. 오늘은 어떤 별의 목소리를 들어볼까요. 다만 누군가의 소리를 듣는다고 해서 내가 곧장 답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그저 여행자, 그 어느 별에도 오래 머무를 수 없는 떠돌이. 누구의 일에도 손 뻗지 못하고 한 걸음 뒤에서 지켜보는 방관자. 우주의 온도가 몇 도니 어쩌니 하고 서로들 말한대도 내게는 느껴지지 않는 걸요.
 
 물 위를 걸어본 적이 있나요? 나는 물 대신 우주를 걸어요. 내 발걸음마다 울려퍼지는 파동이 발 밑으로 보이는 저 끝없는 우주를 신기루로 보이게 만들어요. 그저 스치는 걸음마다 겹치며 사라지는 동심원들, 그리고 귓가로는 내 걸음을 알고 노래하기 시작하는 별들. 그들의 목소리는 노래가 되어 돌아와요.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는 불완전한 관찰자.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영원히 자라지 못하죠. 다른 것을 이해할 수 없는 여행자가 자랄 수 있다니, 그거야말로 바보같은 말이 아닌가요. 그래서 또 다른 내 이름은 어린 왕자. 그 이름은 누가 주었는지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만 여태까지도 간혹 내 마음을 울려주는 이름 중 하나입니다.
 
 다만 우주는 넓고 광활한 시간들. 우주를 모두 들은 자는 아직 없다고 합니다. 한 번의 탄생으로는 백 중의 하나도 다 돌아볼 수 없는 그런 곳입니다. 과거와 미래가 갈라지는 순간 수많은 장소가 번져 흐르고 작은 소우주들이 눈을 뜨면 또 새로운 세상이 나타납니다. 아무리 보고 걸어도 모자란 이 이름. 그러고 보니 갓 태어났던 별이 내게 주었던 이름이 생각납니다. 그는 내게 밤의 산책자라는 이름을 주었지요. 그러나 그가 지어준 이름이 빠르게 식은 까닭은 내가 아직 밤도 낮도 맞이하지 않았을 뿐더러 둘 중 누구도 나를 만나러 와주지 않아, 단어만 알고 있을 뿐 그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네. 여행자의 우주는 낮도 밤도 찾아오지 않는 시간, 멎어버린 시계바늘과 같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 이름은 내 핏줄에서 금방 도망치고 말았습이다. 나는 다만 처음으로 이름이 식는 것을 겁내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여행자의 밤은 별들의 틈에 몸 뉘일 때에나 찾아오는 공허.
 
 머플러가 휘날리면 근처에 블랙홀이 있다는 얘기겠지요. 나는 날리는 머리카락을 가만 두었습니다. 아무렴 어떨까요, 바람을 타고 흐르는 기계도 있다지 않습니까. 바람을 흐르는 기계는 어느 별이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간만에 이야기가 통했던 그 별은 자신의 이름을 어머니라고 했습니다만, 내가 보기에는 아직 덜 자란 어린 아이 같았습니다. 마음 속에 무슨 설움과 아픔이 그리 많은지 계속 터지기만 하더군요. 그 별은 내게 걷는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 그는 나와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홍염을 홀로 터트렸습니다. 공허를 불태우는 별은 아름다웠어요. 그와 함께 살아가는 어린 것들을 눈에 담아볼 수 있음이 즐거웠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또 나에게 온통 빛나는 별도 소개해주었는데, 내 운명의 지침은 거기로 향하지 않아 나는 그 별의 가까이로 여행을 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내 이름은 아직도 서넛의 별을 더 만날 수 있을 만큼이나 뛰고 있습니다.
 
 별들이 모두 이름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운이 좋을 때에는 셋을 방문하면 하나가 이름을 주지만, 나쁠 때에는 일곱을 만나도 주지 않는 것이 이름이에요. 게다가 별이 여행자를 온전하게 받아들이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이상 그 이름은 쉬이 식어버리고 말아요. 그래서 우리는 늘 바쁘게 걷습니다. 아직까지도 이 우주를 전부 맛본 여행자는 없지요. 물론 우리는 평행을 걸어 얼굴 마주할 일도 없으니 서로의 기록을 나눌 일도 없구요. 단지 우리가 아는 것은 새로운 여행자의 탄생과 이름이 다한 여행자의 죽음 뿐, 그 외의 어떤 것도 공유할 수 없는 평생의 외로움. 그러나 이 여행은 영원히 즐거울 것이 당연하기에 나는 여전히 최초의 이름을 마음에 품고 있어요. 즐거운 외로움.
 
 혈관을 흐르는 이름들이 함께 했던 이야기를 속삭입니다. 우리는 이름 없이 태어나 수많은 이름들이 울려주는 심장의 박동으로 생을 부지합니다. 누구에게도 이름을 받지 못하는 날에서야 비로소 동력원을 멈추고 별들의 사이, 공허의 틈에 몸을 누인 채 모든 것의 여행을 마칩니다. 그 날의 끝까지 나는 걷습니다. 또한 여행자들은 걷습니다. 모두 제각기의 길을 가지고 있어 흔들리는 동심원이 각자의 걸음을 따라 피어나는 모양새. 그러나 그 동심원 위의 물건이 다른 곳으로 나아가지는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다른 길로 도망칠 수 없어요. 여행자에게 운명이란 갈대에게 불어오는 바람과도 같아 그저 바람 부는 대로 이리 눕고 저리 눕습니다. 그러나 아픔은 없는 길. 후회도 없는 길. 다만 뒤를 돌아볼 수 없기에.
 
머플러가 휘날렸습니다. 오늘도 별들의 노래가 귓가를 덮는 길에 걸음 따라 두근거리는 이름들. 그리고 나는 걷습니다. 

 

2014.01.08 백업_트위터 단문

 

불이 타오른다. 바작거리며 장작을 살라먹는 빛에 홀린 듯이 날벌레들이 나부껴 바스라지고 재가 된다. 주변은 하얀 자작나무 숲. 어둠 속에서 오로지 위를 향해 타오르는 불을 따라 고개를 들면 하늘은 유려하게 흐르는 별빛의 강. 밤의 호흡이 느리게 이어진다. 숨을 천천히 토해낸다. 마음이 버겁게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