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ɴ
   

2023.10.25 09:08 # reply

 

1
당신을 묘사할 수 없습니다 일에 미친 여자는 매일 아침 나를 칼 위에 낳고 춤에 미친 남자는 밤마다 칼을 흔듭니다 무서워서 매일 저녁 입이 돌아가는데
아무 것도 발음 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귓속말의 세계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달이 뚝 떨어지는 난생처음의 새벽
어쩌자고 이런 쓸쓸한 날에
목이 긴 나의 귀부인은 열차를 타고
불같은 기관사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2
텅 빈 지하실,
검은 염소는 밤새 뒤척거리다... 뭘 할까 달력을 먹고 엽서를 쓴다
한번도 만난 적 없는
 
니노셋게르미타바샤 제르니고코티카에게.

그날 밤 나는 그곳에 있었어 불길이 번져 가는 과수원 어지럽게 널린 사다리들 고무 손을 단 수확용 장대들이 아름답게 불타오르고 환호성이 터졌지 가지마다의 붉은 열매들은 퉤퉤퉤 씨를 뱉었어 절연節煙에 박차를 가했어 그러나 우리는 불 속에 있었고 먼 숲으로부터의 새벽은 오지 않았어 비명이 터졌지 뜨거운 혓바닥에 치를 떨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는 달을 엉망진창으로 묘사했어 한밤의, 서서히 잿더미로 변해 가는 과수원 어둠 속에서 누군가 나무라는 투로 말했어 컷! 컷! 나는 그만 장면 속에서 제외되었고 나는 텅 빈 지하실에 있어 니노셋게르미타바샤 제르니고코티카야 열차를 타지마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나는 텅 빈 지하실에도 있어 열차를 타선 안돼 진짜 장면은 너의 안에 있어

 

3
매일 아침 주름 투성이의 여자는 바구니 가득 붉은 열매를 주워 담았습니다
밤마다 스텝을 밟으며 춤에 미친 남자는 바구니를 통째로 집어삼키고 자꾸만 키가 자랐습니다
당신을 묘사할 수 없는 날들
무서워서 매일 저녁 코가 돌아가는데
어떻게 당신을!
 
나는 부드러운 입맞춤의 세계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달이 뚝 떨어지는 난생처음의 새벽
어쩌자고 이런 쓸쓸한 날에
목이 긴 나의 귀부인은 열차를 타고
불같은 기관사의 손에 살해당해야 하는 걸까)

 

4
붉은 스타킹을 뒤집어쓴 남자는 뭘 할까... 아령을 먹고 부고訃告를 쓴다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안녕 검은 염소야.

너는 걷고 나는 달리지 너는 눕지만 나는 춤춘다 너는 차갑고 틀렸어 그러나 나는 옳고 뜨겁다 어쩔텐가 진짜 장면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걸 사라진 나라 사라진 이름 네가 보낸 엽서는 당분간 내가 간직할게 울지마 끝났어 컷! 컷!

 

황병승, <니노셋게르미타바샤 제르니고코티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