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ɴ
   

2023.12.07 15:38 # reply

 

 

 

계절에 맞지 않는 차림이었다. 얇은 재질의 치파오는 무대의 빛을 받을 때마다 부분이 빛났다. 분명 금사로 무늬를 낸 거겠지, 생각하며 소년은 무대 뒤의 천에 숨어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목소리는 아름다웠지만 그가 알 수 없는 어떤 감정에 젖어 있었다. 잊히지 않을 것만 같은 풍경이다. 무대가 끝나고 불이 꺼지면 시꺼먼 양복 차림의 남자들이 가수를 데려갔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이름 없는 소년은 이름 모를 가수가 두꺼운 모피를 어깨에 걸치고 검은 차에 타는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

 

 

"난초의 란이래."

"뭐가?"

"그 가수 이름." 

"에… 그렇구나."

"엄청 어리던데. 여기 잘못 온 거 아냐?"

"몇 살인데?"

"이제 열아홉 살."

 

할 말이 끝났다는 듯 입을 꾹 다문 여자애는 때 낀 손바닥을 내밀었다. 소년은 주머니를 뒤져 동전 두어 개를 올려주었다. 빼앗아가기라도 할 것처럼 동전을 강하게 움켜쥔 상대가 후다닥 뛰어갔다. 썩 도움되지는 않겠지만 소년도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메이레이, 조심해! 넘어져!"

 

골목 모서리를 따라 메이레이가 휙 사라진다. 짧게 한숨을 쉰다. 다시 계단에 앉아 턱을 괸 소년만 남았다. 도시 설계 과정 중 횡령을 위해 어디로 이어지지도 못하고 아무 데에나 만들어진 계단들은 도시의 복잡함을 더하기에 충분한 요소였다. 길을 찾기 위해서는 계단을 잘 골라야 한다. 괜히 힘만 들고 가려던 곳엔 가지도 못할 테니까.

 

그러나 골목에 숨어 패거리를 꾸민 꼬마쥐들에게 계단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작은 체구로 계단 난간을 잡고 몸을 가볍게 움직이면 공간의 한계를 초월해 그들은 어디로든 달아날 수 있었다. 그리고 난분분 흩어져 제대로 잡기 어려운 꼬마쥐들 중 머리 굵고 또래에 비해 한 뼘 넘게 큰 소년은 자연스레 그들의 대장 격으로 행동하곤 했다.

 

이를 테면 이번의 동전도 그렇다. 메이레이는 사람의 비위를 잘 맞추지 못하는 대신 유달리 빠른 발과 작은 몸으로 여기저기 숨어들어 남의 이야기 엿듣기를 잘 했다. 소년은 그런 메이레이에게 못된 짓은 그만두라고 윽박지르는 대신 동전을 주고 메이레이가 가져온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면 메이레이는 굶지 않아도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