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ɴ
   

write 240218

2024.02.18 20:53 # reply

 

 

실패의 연속. 삶의 무엇 하나 제대로 쥐지 못했다. 낡은 금속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 소리는 불규칙적이었다. 호흡을 가다듬으려 몇 번이고 삼킨다. 목 너머에서 피비린내가 올라온다. 움직일 때마다 박힌 비수가 근육을 파고드는 듯 했다. 통증에는 익숙했다. 칼잡이에게 칼 맞는 일이 대수로울 것은 없었다. 매 시간마다 예고는 들이닥쳤다. 배척하는 듯한 시선, 방 앞을 맴도는 고요한 발걸음, 외출 후의 방에 타인의 흔적이 묻어나기 시작한 그 때. 문 틈새 끼워둔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는 것을 몇 번이고 보았다.

 

문제는 하나. 이 배신이 영영 찾아들기를 바라지 않아 눈 감고 외면한 자신이다. 불야성, 쏟아지는 매연 사이 홀로 청청한 마천루에는 언제나 주인이 있으니. 버려진 짐승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따위도, 아주 잘 알지만.

 

사무치게 외로워 마음을 내주었다. 계단을 헛디딘다. 난간에 몸이 부딪혔다. 시야가 어지러웠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오래 전 머물던 집. 과연 저 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는 짐작할 수 없다. 녹슨 열쇠를 버리지 않은 것은 천운이겠으나, 하늘의 뜻을 알 수 없기에. 아침부터 날이 지나치게 좋았다. 형광빛 네온사인에 낭비하기에는 맑은 하늘이었다. 여자의 가족은 이미 핏물 한 줌으로 돌아간지 오래, 과거의 배반자를 척결한다는 명목 아래 숨이 흩어졌다. 실질 죄가 없던 것은 모두 알고 있었다. 충성을 확인할 요량이었으리라.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 여자의 남편은 눈을 마주치며, 당신은 후회하겠지, 하고 말했다.

 

관음의 칸논, 흐르는 버들가지를 모사할 줄 모르는 자. 조직의 우두머리는 웃음을 터트리며 여자에게 양류관음도를 선사했다. 자네에게도 물 위의 달을 바라보는 운치는 있을 텐데. 버들가지를 쥘 줄은 모르는 게지. 처참한 마음도 누군가의 신뢰 아래서는 어렴풋 위로받는 듯 했다. 아니, 실질 남은 것이 그뿐임을 알았기에… 자비 없는 구제의 현신이었다. 훌륭한 청소부였다. 오탁을 닦아내리라. 언제고 당신의 시선이 나를 향할 수 있다면.

 

당신은 후회하겠지.

 

후회하겠지. 칸논은 비로소 그의 말을 되새겼다. 머리가 차게 식어가는 지금에서야. 피를 쏟아내 도리어 정신이 명료한 듯 했다. 기어올라오다시피한 계단, 아래를 보면 핏자국이 점점이 흩어졌다. 비라도 쏟아지면 좋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혈이 끝나고 죄다 닦아내야 한다. 뒷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돌아가는 길에는… 아니, 돌아갈 곳은 이제 없다. 무엇을 후회하고 있는 건가. 필요한 사람이 되지 못했던 것을, 보다 제대로 죽이지 못한 것을, 돌려주지 못한 것이 남아있는 것을, 무엇을 하지 말아야 했던 것인지. 간신히 문 앞에 선다. 오래된 열쇠를 쥐고 구멍에 쑤셔넣는다. 저 너머에는 누구도 없어야 한다. 누구도 없을 것이다. 모두 그의 손으로 부순 것이니까. 그러나 누군가 있다면.

 

어쩔 도리가 없었다. 더 이상 돌아갈 곳은 없다.

최후의 패배가 목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