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ɴ
   

write 240218

2024.02.18 21:49 # reply

 

 

헛짓이다. 짧게 단언했다. 연기가 매캐했다. 팔뚝에 약을 꽂아넣고도 허리를 따라 통증이 올라왔다. 약의 효과를 의심할 수는 없으니, 통증에 무뎌졌거나 그만한 상처인 까닭이다.


진귀한 손님이 아닌가, 자네 만날 날을 익히 기다렸는데. 허허로이 웃으면서도 눈 가늘게 뜬 남자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표적 중 하나였으나, 박쥐처럼 잽싸 제대로 칼 꽂을 날은 없었다. 칼은 손에서 미끄러진지 오래였다. 가늠하는 시선이 오간다. 기다렸다고. 현상금이 달렸을 리는 없다. 토사구팽, 부러진 칼에 가치를 두지는 않는다. 돌아갈 수 없는 것을 그리워해도 소용은 없다. 쓸모는 끝났다. 그럼에도 일말의 여지조차 없는지…. 생각의 꼬리를 잡아물고 능청스런 목소리가 이어졌다.

 

"자네 귀인을 그리 보아서야 되겠는가. 끈 떨어진 신세에 박하게 굴지 말게. 본인의 목숨 떨어지면 자네 몸 뉘일 자리가 어디 남겠어."
"왜 여기까지 데려왔지."
"이리 야박하게 말해서야, 찾아온 보람이 없겠구만. 자, 자, 그러지 말고 들어보게나…"

 

까닭은 경호다. 꼭대기에 오른 것은 제 아래 둔 사냥개를 삶아 죽일 지경에 이른 미치광이. 사람 아닌 것에 마음 주지 않는 이가 제 뜻대로 거리를 쥐락펴락할 요량이다. 박쥐는 혼란이 도래할 것을 짐작했다. 그래서 때마침 버려진 칼을 주웠다. 그 뿐이라고. 되뇌이면 남자가 웃는다. 덮고 있는 이불에 담뱃재가 떨어진다. 이이, 그 편이 훨씬 마음 놓이지 않는가. 이제 와 본인을 죽인다고 돌아갈 수는 없다네. 자네는 그 여자에게 '사람'이 아니잖는가.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사무친다. 네가 무엇을 안다 쉽게 지껄여. 날카로운 반응은 실제를 알기에 도리어 뚜렷하다. 창가로 차가운 밤의 불빛이 스친다. 해가 들지 않은지 오래된 냄새가 난다. 담뱃불이 사그라든다. 남자는 쥐고 있던 성냥갑을 여자에게 밀어주었다.

 

"어허, 실수했구만. 마음 풀고 한 대 피우겠나."
"피우지 않는다."
"코토네의 것인데도."
"네 뭘 믿고."

 

여전히 웃는 눈이 이쪽을 본다. 

 

"자네, 그리 욕심이 없지는 않을 텐데. 왜 그리 어려운 길을 고르려 드는 겐지. 본인 옆은 넉넉히 비어 있으니 마음껏 골라도 된다네. 적은 피차 많지 않은가."
"네놈이라고 다를 것 같나."
"암, 다르고 말고. 섭섭하게 말하지 말아. 적어도 사람으로는 보지."

 

칼 한 자루가 아니라. 무심결에 손 끝이 주변을 더듬는다. 남자는 이어 칼을 밀어준다. 손잡이를 여자의 방향으로 돌린 채다. 단단히 미친 놈이 분명하다.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눈이 마주친다. 웃고 있나, 아니, 웃고 있지 않다. 이렇게 살아 버틴 것이다. 여자는 이 다음의 말을 알았다.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칼을 꺼내 찌르면 된다. 간단하다. 사람으로 보지 않도록, 여기서 끝을 내도록, 이 이상 남에게 마음 따위 내주지 않아도 되도록. 그러나,

 

"어찌 생각해, 칸논."

 

여전히 실패하고 만다. 여자는 칼 손잡이를 쥐지 못했다.
후회하겠지. 그 말 한 마디가 다시 뇌리를 울렸다.